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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라거펠트: 여정(PARCOURS DE TRAVAIL)
전시회 영상

사진촬영의 외연
칼 라거펠트의 이미지들에 대한 안네 까르티에 브레송(Anne Cartier-Bresson)의 주석
The 'skin' of photography
Notes on Karl Lagerfeld's images by Anne Cartier-Bresson

칼 라거펠트는 1980년대 말 사진촬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부터, 새롭게 불타오르는 열정을 자신의 패션 작업과 연관시켰던 것 같다. 그가 촬영한 이미지들은 언론이나 광고를 위해 제작했을 때조차도 매우 개인적인 느낌이다. 사진 속의 친근한 이미지는 빛의 노출과 인화 기술에 대한 특별한 취향을 보여주며, 그의 독특한 현실인식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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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출과 인화 (Exposure and printing)
칼 라거펠트는 필요에 따라 흑백 필름, 작은 포맷의 컬러 필름, 6X6 리버설 필름, 폴라로이드 그리고 최근에는 디지털 카메라까지 다양하게 사용한다. 처음에는 흑백인화를 하면 완전한 블랙과 강한 톤 대비 효과를 주는 그래픽 마무리 때문에 완전히 매트한 느낌을 줬다. 농도가 짙은 인화는 천이 빛나는 파도를 타고 출렁이는 느낌을 주었다. 때로는 시각이 매우 전통적이고 역사적 관점을 반영함에 따라 베르사유 시리즈에서 일부 작품은 으젠느 앗제(Eugene Atget)의 세기말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도 줬다. 실버 젤라틴 감광지를 사용한 작품은 현상과 인화 방법에 따라 서로 다른 톤을 주기도 했다.
전통적 인화 및 색변환 기법은 세피아로 변환할 경우, “오스카 슐레머에게 경의를 표한다(Homage to Oskar Schlemmer)” 시리즈에서처럼 그림같은 색감을 준다. 이러한 측면은 움직이는 대상과 따뜻한 톤에서부터 오는 빛을 흐릿하게 표현함으로써 강조된다. 실버 그레인이 실버 황으로 변하면서 안정적으로 변하고 어떤 보관 상태도 다 견딜 수 있게 된다. 매트한 알루미늄 재질에 인화된 다른 시리즈의 경우 차갑고 메탈릭한 측면이 있어 대상을 더욱 뚜렷한 그래픽으로 표현하고 그림자와 하이라이트 사이에서 강한 대조를 이룬다.

폴라로이드 변환 (Polaroid transfer)
1990년대부터 칼 라거펠트는 즉석 현상 방법을 이용한 특수 재질에 흑백, 세피아 혹은 컬러로 현상하는 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그는 20 x 25 카메라를 사용했다. 양화(positive image)를 담고 있는 젤라틴 유제가 뜨거운 물과 분리돼 아르슈(Arches) 수채화 지로 변환됐다. 이 기술을 이용해 톤의 정교함을 살려 그림같은 밝은 느낌을 낼 수 있었다. 라거펠트는 이 효과를 이용해 인화하는 사진 표면에 아이쉐도우를 가지고 혹은 마른 색소를 지우는 방법으로 직접 수정을 가하곤 했다.

레시노타입 (Resinotype)
레시노타입은 알퐁세 푸이타벵(Alphonse Poitevin)이 개발한 알카리성 중크로산염을 이용한 사진 기법으로, 그는 이를 통해 뤼네 공작상(Duke of Luynes Award)을 탔다. 이러한 기법을 칼 라거펠트가 처음 접한 것은 1996년에서 1997년 사이였다. 6X6 컬러 슬라이드로 시작한 그는 중크로산염 젤라틴 층을 굳히는 방법에 기초한 색소 인화 방법을 이용했다. 페인트브러시를 이용해 표면에 색소를 더한 뒤 자리를 잡도록 열을 가하면 된다. 이 과정은 많은 수작업이 필요하며 컬러 표면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굉장히 자유롭다.

프레송 인화기법 (Fresson prints)
또 다른 색소를 이용한 과정은 프레송 가문이 1950년대 상업화한 것으로, 이는 라거펠트로 하여금 네 가지 색상을 이용한 부드러운 톤의 인화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인화기법을 사용하면 이미지가 강한 그림같은 효과를 나타내며 20세기 초 영상중심주의자들의 작품과 같은 느낌을 준다. 라거펠트의 작품은 6X6 컬러 슬라이드를 이용한 것이며 다시 프레임을 더하지 않았다.

스크린 인화기법 (Screen prints)
이미지에 독특한 느낌을 주는 이 기술적 과정의 원칙은 실버 매트릭스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미지는 스텐실처럼 잉크를 유지하는 인화스크린 위에서 노출된다. 실버 혹은 골드를 사용하기도 하고 아슈르 지를 사용하기도 한다.

디지털 인화기법 (Digital prints)
1990년대 말, 칼 라거펠트는 스튜디오 7L(studio 7L) 에 있는 자신의 실험실에서 새로운 기술을 시도했다. 디지털 인화를 시작으로, 그는 색소 잉크젯으로 파인 아트 형식의 인화를 자신의 의지에 따라 표면과 직물 효과가 바뀔 수 있는 다양한 매체 (캔버스, 크리스탈 감각지의 질감, 면 야슈르 지, 혹은 하네뮬레(Hahnemühle)사의 감각지 등)를 이용하여 제작했다.
그의 예민한 직관력 뿐만 아니라 시각적 경험을 이미지화하는 것에 대한 궁금증과 취향 덕분에 칼 라거펠트는 컬러링, 화장, 몸과 얼굴에 특히 초점을 둔 새로운 사진기술을 연구에 적용할 수 있었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그는 사진기술을 활용하여 풍경화, 초상화 그리고 누드에 관한 그의 감정을 사실적으로 기록했다.
이것을 위해 그는 항상 빛에 대한 세심함과 관능을 잘 이용할 수 있는 매체를 고르며 늘 정교한 방법을 동원한 넓은 범위의 과정을 시험한다.
라거펠트가 1987년도부터 지금까지 사진 작업을 하는 동안 노출과 인화에 있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칼 라거펠트는 이런 변화 뿐만 아니라 새로운 필름의 발전까지 모두 잘 활용함으로써 수작업과 인화 과정의 장인정신을 잘 강조해 그만의 독특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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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라거펠트: 여정(PARCOURS DE TRAVAIL)-장-뤽 몽테로소(Jean-Luc Monterosso)

- 유럽 사진 전시관 디렉터의 전시회 소개글

9월 15일 - 10월 31일
유럽 사진 전시관
5-7, rue de Fourcy
75004, Paris

사람들은 소명에 의해 사진가가 되는가 아니면 필요에 의해 그렇게 되는가?
칼 라거펠트의 경우 대답은 간단하다. 그는 도전을 통해 사진가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은 20년 전 칼 라거펠트가 자신의 컬렉션을 보도한 언론사 사진에 실망해, 그의 동료이자 친구인 에릭 프룬더(Eric Pfrunder)의 권유로 카메라 렌즈를 통해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로 결심했을 때 시작되었다.

"삶이 모험인 것처럼 사진도 모험이다. 사진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은 자신과 삶의 관계를 이해해야만 한다”고 해리 캘러한(Harry Callahan)은 말했다.

그래서 이번 전시회는 문화적 식견이 높았던 칼 라거펠트가 패션과 사진을 통해 선, 형태, 컬러의 아름다움을 선보이기로 결심한 후, 활발하게 펼친 예술 작업의 회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칼 라거펠트는 매 순간 이미지만을 생각하고, 가볍게 흘러가는 찰나의 순간에도 오로지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창조하는 데에만 몰두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신조는 강한 호기심과 채워지지 않는 갈망으로 모든 사물을 철저히 보는 것이고, 그러면서 관찰할 대상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초상화, 풍경, 건축, 누드를 비롯해 정물을 촬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칼 라거펠트는 스튜디오에서 패션을 위한 촬영을 많이 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사진 장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헌신적이고 의욕에 넘치는 어시스턴트에 둘러 싸여, 그는 20×25 또는 24×36 카메라나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할 뿐이다. 반면에 모델선정에는 신중을 기해, 최고의 역할을 맡기려고 노력한다. “모델을 소모시켜서는 안되고, 스스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줘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칼 라거펠트는 주문이 들어왔을 때 – 그의 말을 빌리자면 – 연쇄살인범처럼 행동한다고 한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든 어떤 장애물이 놓여있든 그는 일을 밀고 간다. 하지만 라거펠트가 추적한 후 제거하는 것은 다름아닌 결함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그의 패션 사진들이 여전히 트렌드에 뒤쳐지지 않아 보이는 것이다. 라거펠트의 작품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한 후 틀을 완전히 깨버린다. 마치 애버던(Avedon)과 피터 린드버그(Peter Lindbergh)의 작품처럼 말이다.

그의 누드 작품들도 우아함을 입혀놓은 듯, 얌전하면서 절대 외설적인 느낌을 풍기지 않는다. 칼 라거펠트는 사람들을 놀래키거나 도발하려 들지 않는다.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나 “성의 역사” 를 쓴 악명 높은 안드레 세라노(Andres Serrano)의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 관습에 도전을 할 때에도 정신적 도전을 추구한다. “폭력의 미(The Beauty of Violence)”라는 작품에서 디오니소스의 본능적 댄스를 추던 밥티스트 지아비코니(Baptiste Giabiconi)가 욕망의 가장 근원적 충동을 표출하는 장면에서도 누드가 드러나지 않고 렌즈에서 멀어졌던 것과 같이 말이다.

칼 라거펠트는 주로 성당을 연상케 하는 그의 큰 스튜디오에서 사진 작업을 한다. 그의 스튜디오에는 책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라거펠트의 스튜디오를 워홀의 팩토리(Warhol’s Factory)와 간혹 비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칼 라거펠트의 작업과 신념은 기계가 되려 했던 워홀과는 거리가 멀다.

뉴욕에 위치한 워홀의 팩토리는 방황의 장소였다. 반복과 고정관념을 이용해 무명의 창조를 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라거펠트의 스튜디오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곳은 오뜨 꾸뛰르가 탄생하는 작업실이자 여러 사람이 협력하는 장소이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과 기술에 노력을 더하여 진정한 예술을 탄생시키는 곳이다. 테이블 위에 종종 놓여있는 다이어트 콜라를 빼면 칼 라거펠트의 스튜디오는 1960년대 미국을 지배하던 환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스튜디오 7L은 파리 중심가에 위치한 깔끔하고 밝은 분위기의 작업실이다. 진지하게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유머가 종종 오가는 따뜻한 분위기에서 하나의 작은 팀이 탄생하였다. 이곳은 사진작가, 아니 이미지 창조자의 작업실이다. 진정한 이미지 작업실이며 독특한 작품들이 탄생하는 곳이다.

사진의 역사상 비슷한 작업을 한 예술가들은 많았다. 드가(Degar),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 브랑쿠시(Brancusi)등 유명한 예술가들은 사진을 자신만의 비법으로 사용했고 창의적이면서도 혁신적인 작품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드가는 자신의 그림 작품을 정리하기 위해, 브랑쿠시는 공간에서의 조각상 작업을 위해 이미지를 사용했다면 칼 라거펠트에게 이미지는 자극제와 같았다. 선보다 중요한 것은 형태이고 형태는 빛을 머금는다. “나는 사진을 찍을 때 그림을 그릴 때와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빛 때문에 새로운 차원의 작품이 탄생한다.(2)” 그러므로 사진 찍기란 단순히 빛을 가지고 쓰는 것이 아닌, 빛을 이용해서 작곡하고 그림을 그리는 행동과도 같은 것이다.
수많은 사진작가들과 특히 신문 및 잡지 사진기사들에게 노출은 곧 리스크를 의미하기도 한다. 위험하다는 것 외에도 카메라에 잡힌 순간이 다시 반복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사진 작가들에게 노출은 사진으로 창조하는 과정의 일부분에 해당할 뿐이다. 그 창조의 과정에는 실험과 현상 및 인화가 있다. 이들에게 잉크와 색감 뿐만 아니라 종이의 선택은 굉장히 중요하다. 칼 라거펠트는 이 분야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종이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재료입니다. 그림이 시작하는 곳이고 사진이 완성되는 곳입니다.
. (3)” 오래된 과정이든 현대에 들어서서 생긴 과정이든 새로운 과정이든, 그것이 골드와 실버 프린팅이든 레시노타입(resinotype)이든 폴라로이드이든 스크린 프린팅이든 디지털 프린팅이든 상관 없다. 앤 까르티에-브레송(Anne Cartier-Bresson)이 칼 라거펠트의 작품을 보고 쓴 노트에서 지적했듯이 “라거펠트가 1987년도부터 지금까지 사진 작업을 하는 동안 노출과 인화에 있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칼 라거펠트는 이런 변화 뿐만 아니라 새로운 필름의 발전까지 모두 잘 활용함으로써 수작업과 인화 과정의 장인정신을 잘 강조해 독특한 작품을 탄생시켰다.(4)”
칼 라거펠트는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 에드워드 스타이켄(Edward Steichen), 클러렌스 허드슨 화이트(Clarence Hudson White) 그리고 1920년대 독일 사진 기법에 관심이 많다고 인정한 바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회화, 영화, 건축, 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모두 참고한다.

오스카 슐레머에게 경의를 표한다(Homage to Oskar Schlemmer)”라는 시리즈의 작품 중에는 프리츠 랑(Fritz Lang)의 메트로폴리스(Metropolis)와 무르나우(Murnau)의 영화로부터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 외에도 로렌스 알마-타데마 경(Sir Lawrence Alma-Tadema)의 작품이나 카스파르 데이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작품 속 아름다운 풍경 혹은 프레데릭 에드윈 처치(Frederic Edwin Church)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칼 라거펠트는 그의 우아함과 유머감각으로 여러 장르에서 영감을 얻는다. 마치 그가 움직이는 이미지만큼이나 정지된 이미지를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의 사진 작품은 젊은 세대와도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며 미술, 사진, 영화, 영상의 장르를 모두 아우른다고 할 수 있다.

백과사전을 방불케 하는 방대한 유럽 문화에 대한 지식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새로운 형태와 재료를 향한 끝없는 탐색이며, 사진에도 큰 가르침을 준다고 평한다. 그가 주는 가르침은 거창하거나 학문적이라기 보다는 가벼우면서도 환상으로 가득 차 있는, 궤도를 벗어나 모험을 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한 남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라거펠트는 기꺼이 사진 학교 과정을 거부한 진정한 거장이다.

장-뤽 몽테로소(Jean-Luc Monterosso)
메종 유럽 포토(Maison européenne de photographie) 회장
2010년 8월 25일 파리에서

(1) 에릭 프룬더(Eric Pfrunder)와의 인터뷰, 2010년 7월 20일, 파리
(2) 불라키아 갤러리(Galerie Boulakia)전시의 카탈로그 서문, 1992년, 파리
(3) 위와 동일
(4) 앤 까르티에 브레송 (Anne Cartier-Bresson), 사진작업의 “피부”. 칼 라거펠트 작품에 대한 노트 , 215페이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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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소호의 명소-사라 제시카 파커

한국 마켓(The Korean Market)
여기에는 항상 싱싱한 채소가 잘 진열되어 있고, 차이나타운 이외의 지역에서는 구입하기 어려운 제품도 있다. 또한 희귀 물품도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고, 새벽 2시에도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 운이 좋다면 가게 주인이 계산대에서 한국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을 수도 있다.
프린스 스트릿과 톰슨 스트릿 남서쪽 코너

라페토스(RAFFETTO'S)
다양한 향미가 가득한 홈메이드 라비올리로 유명한 곳. 여기에서 판매하는 파스타는 냉동 제품이건 금방 만들어낸 제품이건 간에 뉴욕 각 가정 주방에 꼭 필요한 식재료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이 파스타 전문 판매점의 주인은 우아한 여인으로 늘 이 곳에서 볼 수 있다.
맥두걸 스트릿과 설리번 스트릿 사이 하우스턴 스트릿

톰슨 케미스트(Thompson Chemists)
이 약국의 주인인 게리씨는 단골손님에게 더욱 더 친절하고, 아무리 먼 곳이라도 상품을 우편 배송해주며, 대형약국 체인점이 판매를 꺼려하는 특별 아이템도 판매한다. 또한 현재 판매하지 않는 상품이라도 고객이 요청 시 구비해 놓는다. 여기에 들어서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 든다. 직원 모두가 상품 관련 지식이 해박하고, 고객을 친절하게 대하며, 약국을 방문하는 모든 고객의 이름을 알았던 때처럼, 여기 직원들이 여전히 친절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우스턴 스트릿과 프린스 스트릿 사이 톰슨 스트릿 서쪽

12 체어스(12 CHAIRS)
맛있는 이스라엘 요리를 합리적인 가격에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 이스라엘식 샐러드와 스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요리들이 완벽한 맛을 선보인다. 편안한 분위기,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와 호젓한 위치, 직원들의 친절한 서비스 때문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고 싶은 곳. 물론 음식 맛도 최고이다.
하우스턴 스트릿과 프린스 스트릿 사이 맥두걸 스트릿 동쪽


라울스(RAOUL'S)
소호를 대표하는 레스토랑으로 오랜 전통을 자랑하며 뉴욕 최고의 스테이크와 감자튀김으로 유명한 곳. 차가운 아티초크로 식사를 시작하기를 권하고 싶고, 음주를 즐긴다면 와인 한잔과 함께 편안하게 애피타이저를 기다려도 좋을 것이다. 독특하고 멋진 장식을 오랫동안 유지해왔고, 은은한 조명아래 아담하고 친근한 느낌을 주는 레스토랑으로 처음 들어서자마자 손님으로 북적거리는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입구는 좁지만 들어서기만 하면 멋진 식사를 즐기며 추억에 남을 만한 밤을 보낼 수 있다. 잔잔한 음악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소리는 뉴욕에서 들을 수 있는 최상의 사운드트랙.
맥두걸 스트릿과 톰슨 스트릿 사이 프린스 스트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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