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EL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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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 컬렉션

1919년, 따뜻한 지역에서 휴가를 즐기는 고객들을 위해 코코가 제안한 소규모 미드시즌 컬렉션이 미국 보그지에 실렸다. 럭셔리 크루즈 여행이 상류층에 서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았으며, 문화적, 사회적 변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직접 차를 운전하고 스포츠를 즐기는 새롭고 독립적인 여성의 모습도 점차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가브리엘 샤넬은 스포츠 웨어의 등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비아리츠에 위치한 샤넬의 부티크에서 그녀는 바스크 지방이나 프랑스 리비에라, 리도 해변을 무대삼아 당대의 패셔너블한 리조트에서 요트와 휴식을 즐겼던 여성들을 겨냥해 깔끔하고 우아한 의상 (예를 들어 헐렁한 세일러 스타일의 팬츠나 비치 파자마, 오픈넥 셔츠 등)을 선보였다. 때마침 패션의 대중화와 1930년대 여행 붐을 타고, 로피시엘지는 1936년 샤넬의 디자인을 "포괄적인 미드시 즌컬렉션...다양한 정장과 이브닝 가운"이라고 소개했다. 크루즈 정신의 탄생에 가브리엘 샤넬이 앞장섰던 것이다. 차츰 유행이지나고 1950년대에는 크루즈 컬렉션이 주춤했으나, 칼 라거펠트는 1983년 샤넬에 합류한 직후 이 컬렉션을 부활 시켰다. 레디-투-웨어 컬렉션이 끝날 무렵인 늦은 봄 선보이는 크루즈 컬렉션은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크루즈 컬렉션이 성공을 거두면서 2000년부터 매년 정기적인 쇼를 개최하게 됐으며, 머지않아 이런 행보는 패션계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더욱 더 우아하게 다시 태어난 샤넬 스포츠 웨어는 오늘날 새로움을 추구하는 전 세계의 고객들에게 어필하고 있으며, 거의 격월로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고있다. 정제되고 가벼우며 색감이 화려한 여름 의상들은 한낮, 칵테일 아워, 저녁 등 시간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으며, 특히 남미, 중동,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기후에 맞게 제작됐다.

의상의 전통과 코스모폴리탄 스타일의 모던함을 조화롭게 녹여낸 크루즈 컬렉션은 또한 그 자체가 여행이다. 매번 다른 도시에서 쇼를 개최하기 때문에, 이는 칼 라거펠트에게는 가브리엘 샤넬이 가장 동경했던 여행지를 방문해 그녀가 어떤 영감을 얻었을지 떠올려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보트를 타고 있는 가브리엘 샤넬과 미시아 루시 세르(Roussy Sert) - 1935년 경 ©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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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열리는 샤넬 크루즈 컬렉션

2015년 5월 4일, 서울의 중심에 위치한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샤넬의 크루즈 컬렉션이 펼쳐질 예정이다.

파리, 뉴욕, 로스앤젤레스, 마이애미, 베니스, 생 트로페, 캡 당티브, 베르사이유, 싱가포르, 그리고 가장 최근에 선보인 두바이에 이어 한국의 수도에서 크루즈의 정신을 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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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르 페스티벌 패션 부문 수상자 발표

어제 저녁 열린 제 30회 이에르 국제 패션 및 사진 페스티벌에서, 패션 부문 심사위원단은 이례적으로 해당 부문 수상자로 한 명이 아닌 두 명을 선정했다. 먼저 독일 출신 여성복 디자이너 아넬리 슈베르트(Annelie Schubert)가 그랑프리 수상의 영예를 안았고, 부상으로 상금 15,000유로와 샤넬 공방 컬렉션 작업에 참여할 수 있는 특전이 주어졌다.

함부르크 대학 응용 과학부를 졸업하고 하이더 아커만에서 인턴 경력이 있는 슈베르트는 ‘여성적 표현’이 담긴 자신만의 컬렉션을 완성시키기로 하고, 감각적인 소재를 이용해 우아한 레이어드 룩을 만들어냈다. “결정하기가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오늘 아침 심사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거의 만장일치가 나왔어요. 아넬리가 컬러와 소재를 사용한 방식과 그녀만의 여성스러운 감각이 심사위원들의 눈을 사로잡았죠.” 라고 패션 부문 심사위원장 버지니 비아르가 말했다.

한편, 네덜란드 출신 디자이너 바이케 지니헤(Weike Sinnige)도 가작으로 수상의 기쁨을 누렸다. 부상으로 상금 5,000 유로가 주어지는가 하면, 그녀 역시 르사주 공방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도 얻게 되었다. “그녀는 진짜 예술가죠, 그림을 그리니까요. 르사주 공방과 작업을 하면 엄청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라고 비아르가 말했다. 생동감이 느껴지는 그녀의 이번 컬렉션은 칼레이도스코프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것으로, 원근법과 컬러가 자유자재로 사용되었다.

앨리스 카바나(Alice Cavanagh)

아넬리 슈베르트 여성복 컬렉션 / 사진 © 그레구아르 알렉상드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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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르 페스티벌 사진 부문 수상자

네덜란드 출신 사진작가 쇼어드 크니블러(Sjoerd Knibbeler)가 어제 저녁 열린 제 30회 이에르 국제 패션 및 사진 페스티벌 사진 부문에서 그랑프리 수상의 영예를 안으며, 부상으로 상금 15,000 유로를 받았다.

크니블러는 지난 2년 간 공기 역학과 관련된 사진 작업들을 이어오며, 다양한 소재를 사진 속에 등장시켜, 카메라 렌즈를 통해 자연의 강력한 힘을 포착해냈다. 그가 보여준 초현실적이면서도 진짜 같은 이미지들이 일찌감치 심사위원단의 시선을 사로잡고 찬사를 이끌어냈다. “그의 작품은 매우 흥미로웠죠, 우리가 직접 손으로 만져볼 수 없는 바람을 사진 속에 담아냈고, 빛을 사용한 방식도 정말 아름다웠어요.” 수여식이 끝난 뒤, 사진 부문 심사위원장인 에릭 프룬더가 말했다.

한편, 올해 패션 부문 수상과 마찬가지로, 페스티벌 30주년을 기념해, 사진 부문에서도 이례적으로 추가 수상자를 선정했다. 영광의 주인공은 그리스 출신 사진작가 에반젤리아 크라니오티(Evangelia Kranioti)로, 인류학에 관심이 많은 그녀는 전 세계 바다를 가로지르며 만난 선원들의 모습을 친근하게 작품 속에 담아냈다. 부상으로 상금 10,000유로가 주어졌다.

앨리스 카바나 (Alice Cavanagh)

사진 © 쇼어드 크니블러, 네덜란드/네덜란드 ‘P.170’, 종이비행기,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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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르 페스티벌에서 열린
칼 라거펠트의 마스터 클래스

칼 라거펠트는 이에르 페스티벌 기간에 맞춰, 열다섯 번째 자리를 맞이한 국제 섬유 및 패션 컨퍼런스 순서 중 하나로 열린 마스터 클래스의 연사로 등장해, 예비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확실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칼 라거펠트는 “쿠튀리에든 사진작가든, 창의적인 아티스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겁니다.” 라며 사회를 맡은 패션 비평가 고드프리 디니(Godfrey Deeny)의 질문에 응답했다.

칼 라거펠트는 컨퍼런스룸에 모인 청중들과 페스티벌 심사위원단을 향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영감의 원천들과 자신의 커리어, 열정을 차례차례 보여주며, 페스티벌 곳곳에 앉아 있는 라이징 스타들에게 자신만의 팁을 전수했다. 그는 “사진을 찍듯 드로잉을 합니다. 아주 빠르게요.” 라고 말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죽 이어나가는 내내, 단 하나의 정해진 형식만 가지고 활동을 이어나갈 수는 없어요. 저는 지금도 내가 정말 이 일에 맞는 사람인지, 도대체 나의 재능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잘 모른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지금껏 실력을 갈고닦는 일을 멈추지 않고 꾸준히 해 왔다는 거예요. 요즘도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내가 가진 비전을 실제로 옮겨 놓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칼 라거펠트가 드로잉과 사진을 대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가 이번 클래스 내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그는 “저는 쿠튀리에이지만, 늘 사진 찍는 일에 관심이 가져왔어요. 필름 사진이든 디지털 사진이든 개의치 않고 말이죠…… 드로잉과 사진은 따로 놓고 생각할 문제가 아니랍니다. 두 라이프 사이클을 가지고 서로 비교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에요. 무의미한 일이죠.” 라고 분명히 말했다.

사진: 앤 콤바즈(Anne Combaz)

20th-century-masterpiece
20th-century-masterpiece

20세기의 명작

 

1923년 마리 로르(Marie-Laure)와 샤를 드 노아이유(Charles de Noailles) 부부는 로베르 말레-스테벵스에게 이에르(Hyères)를 굽어보는 언덕 위에 “무한히 실용적이며 단순한 집”을 지어 줄 것을 부탁했다. 샤를 드 노아이유의 말을 빌면 모든 것이 “단 하나의 원칙, 즉 기능성을 중심에 두는” 그런 집을 말이다.
몬드리안과 로렌스, 립시츠, 브랑쿠시, 자코메티는 예술 작품으로, 그리고 쥬르댕은 가구로, 마지막으로 게브레키안은 입체파 스타일의 정원으로 이 집을 장식했다. 명료하고 구조적인 형태, 뚜렷한 대비로 이루어진 이 너무나도 모던한 아방가르드 건축물은 또한 합리주의 움직임을 반영하고 있다. 15개나 되는 침실과 수영장, 스쿼시 코트를 갖춘 이 집은 1933년까지 계속 증축 되면서 1,800 평방미터에 달하는 대건물이 되었으며 인간의 영혼과 육체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하나되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의 터전을 표방하고 있다.

울창한 자연 속 숨겨진 진주처럼 하얀 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지중해와 오르제도가 바라다보이는 이 꿈같은 리조트에서 노아유 부부는 달리, 지드, 브르통, 아르토, 풀랑크, 리파르, 헉슬리, 그리고 사실상 당대의 떠오르는 예술가들 거의 대부분을 초청해 함께 시간을 보냈다. 1970년 마리-로르가 세상을 떠난 뒤 이곳은 이에르시의 소유가 되어 몇 번의 복구 작업을 거쳤으며, 오늘날 아트센터 겸 예술가들의 거처로 사용되고 있다. 이 빌라는 올해 30번째로 열리는 국제 패션/사진 페스티벌의 무대가 된다.

올해는 1995년 칼 라거펠트가 흑백으로 남겼던 사진 속 빌라의 영원한 모습을 다시 한번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시대를 관통하는 모던함",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연약함"을 지닌 빌라는 텅빈 듯 보이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왔다. 하지만 이곳은 여전히 지난 한 세기 동안 쌓인 많은 이들의 만남과 예술적 작업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사진에 담긴 빌라는 장식의 서정미가 그대로 남아있으며, 이를 통해 시간의 흔적이 우아하게 표현되고 유한한 현실을 넘어 우리의 상상력을 깨운다.

소피 브라우네르(Sophie Brauner)

사진: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

two-rebel-spirits-figures-of-modernity
two-rebel-spirits-figures-of-modernity

반항의 정신,
모더니티의 상징

프랑시스 풀랑크(Francis Poulenc)는 1930년대 초, 마리-로르 드 노아이유(Marie-Laure de Noailles)에게 코코 샤넬을 “특출난 지성(Prodigiously intelligent)”이라 소개했다. 이는 마리-로르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으며, 이 두 여성의 공통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 두 여인의 어린 시절은 사실과 허구의 영향으로 만들어졌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브리엘 샤넬의 경우 어린 시절의 불행함을 철저히 감춘 채 자기 스스로 전설이 되었다. 마리-로르는 부유한 독일 은행가 집안과 악명높은 사드 후작의 후손인 프랑스 귀족 집안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매우 교양있는 특권층이나 애정이 결여된 집안에서 자라 고독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마리-로르의 독특한 조모, 쉐비녜(de Chevigné) 백작 부인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작품속인 물게르 망트 부인을 만들어내는데 일부 영감을 주기도 했으며, 마리-로르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샤넬과 마찬가지로 마리-로르 또한 자신의 예술가적 본능을 따랐다. 그녀가 샤를 드 노아이유와 결혼한 후 살았던 파리의 타운하우스에는 이미 들라크루아에서 렘브란트, 고야, 루벤스에 이르기까지 쟁쟁한 대가들의 명작이 다수 소장되어 있었다. 노아이유 부부는 데코레이터 장-미셸 프랑크에게 이 집의 새로운 인테리어를 맡겼고, 이 공간은 수도원을 연상시키는 넓게 드러난 공간에 진귀한 가구와 짚, 양피지 등 독특한 소재로 꾸며졌다. 이 무심함의 미학은 샤넬 수트를 즐겨입던 마리로르 자신의 스타일과도 일맥상통한다. 아베 뮈니에(Abbé Mugnier)에 따르면 그녀는 40여 벌의 서로 다른, 하지만 거의 검은색이 주를 이루는 샤넬 수트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늘 단정한 우아함을 추구했던 디자이너 샤넬은 선을 조화롭게 사용하며 옷을 단순화해 움직임이 자유롭게끔 했다. 아름다움과 기능을 동시에 이뤄내며 샤넬은 새로운 모더니티를 정의한 것이다.

코코와 마찬가지로 반항하는 영혼이자 순응을 거부했던 마리-로르는 도발을 즐겼다. 가브리엘이 "경제위기에 맞서는"것을 돕고자 선보였던 대담한 다이아몬드 주얼리를 처음으로 착용한 이들 중 하나였던 마리-로르는, 반짝이는 깃털 브로치를 착용하고 1932년 보그지에 등장했다.

샤넬은 패션의 혁명을 일으켰고, 뮤즈이자 후원자, 그리고 나중에는 화가 겸 작가로도 활동했던 마리-로르는 남편과 함께 브라크, 피카소, 발튀스, 몬드리안, 자코메티, 만레이에 이르는 다양한 작가들의 컬렉션을 수집함으로써 예술사에 기여했다. 노아이유 부부는 파리의 사교계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었으며 다양한 이들을 초청해 초현실주의 작가들을 비롯한 예술계 신예들을 발굴하는 안목을 키웠다. 이들은 영화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했고 마르케비치, 풀랑크, 스트라빈스키 등 작곡가들에게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가브리엘 샤넬 또한 예술계의 숨은 후원자였는데, 그녀는 가르슈에 있는 자신의 빌라를 스트라빈스키와 그 가족에게 거처로 내주기도 했다. 1924년 샤넬은 피카소가 무대 장식을 맡았던 디아길레프의 발레 '르 트랑 블루'의 의상을 디자인하기도 했으며, 다른 여러 작품과 르누아르의 영화를 위한 의상 작업도 맡은 바 있다. 그녀는 당대의 시인들 및 달리, 니진스키, 비스콘티등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코코는 또한 콕토와도 가까운 친구였는데, 마리-로르는 평생동안 콕토에게 푹 빠져있기도 했다. 마리-로르는 영원한 낭만주의자였으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화려한 연애사에도 불구하고 결국 혼자였던 코코 샤넬 또한 사랑이 없으면 여자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고백을 남겼다. 

소피 브라우네르(Sophie Brauner)

마리 로르 드 노아이유 © 앙리 마티니 / 로제-비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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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회 이에르 국제 패션/사진 페스티벌
(30TH INTERNATIONAL FESTIVAL OF FASHION & PHOTOGRAPHY IN HYÈRES)

2015년도 이에르 페스티벌(Hyères Festival)은 메종 샤넬을 명예 게스트로 맞이할 준비에 분주하다. 칼 라거펠트는 아티스틱 디렉터를 맡았고,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디렉터 버지니 비아드(Virginie Viard)는 패션 부문 심사위원단 단장을 맡았으며, 샤넬 패션의 이미지 디렉터인 에릭 프룬더(Eric Pfrunder)는 사진 부문 심사위원단 단장을 맡았다.

4월 23일 시작하여 5일간 열리는 이번 페스티벌은 컨퍼런스와 토론 및 원탁 회의, 워크샵과 전시 등 풍성한 스케줄로 진행된다. 각각의 일정은 전문가들과 학생들, 그리고 일반에 오픈된다.

이와 함께 10명의 패션 디자이너와 포토그래퍼들의 경합 역시 진행되는데 각계의 전문가들과 주요 인사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에 의해 선별될 예정이다. 올해의 수상자 발표와 시상식은 오는 4월 26일 일요일에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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