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l-lagerfeld-parcours-de-travail-by-jean-luc-monterosso

칼 라거펠트: 여정(PARCOURS DE TRAVAIL)-장-뤽 몽테로소(Jean-Luc Monterosso)

- 유럽 사진 전시관 디렉터의 전시회 소개글

9월 15일 - 10월 31일
유럽 사진 전시관
5-7, rue de Fourcy
75004, Paris

사람들은 소명에 의해 사진가가 되는가 아니면 필요에 의해 그렇게 되는가?
칼 라거펠트의 경우 대답은 간단하다. 그는 도전을 통해 사진가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은 20년 전 칼 라거펠트가 자신의 컬렉션을 보도한 언론사 사진에 실망해, 그의 동료이자 친구인 에릭 프룬더(Eric Pfrunder)의 권유로 카메라 렌즈를 통해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로 결심했을 때 시작되었다.

"삶이 모험인 것처럼 사진도 모험이다. 사진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은 자신과 삶의 관계를 이해해야만 한다”고 해리 캘러한(Harry Callahan)은 말했다.

그래서 이번 전시회는 문화적 식견이 높았던 칼 라거펠트가 패션과 사진을 통해 선, 형태, 컬러의 아름다움을 선보이기로 결심한 후, 활발하게 펼친 예술 작업의 회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칼 라거펠트는 매 순간 이미지만을 생각하고, 가볍게 흘러가는 찰나의 순간에도 오로지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창조하는 데에만 몰두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신조는 강한 호기심과 채워지지 않는 갈망으로 모든 사물을 철저히 보는 것이고, 그러면서 관찰할 대상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초상화, 풍경, 건축, 누드를 비롯해 정물을 촬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칼 라거펠트는 스튜디오에서 패션을 위한 촬영을 많이 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사진 장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헌신적이고 의욕에 넘치는 어시스턴트에 둘러 싸여, 그는 20×25 또는 24×36 카메라나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할 뿐이다. 반면에 모델선정에는 신중을 기해, 최고의 역할을 맡기려고 노력한다. “모델을 소모시켜서는 안되고, 스스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줘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칼 라거펠트는 주문이 들어왔을 때 – 그의 말을 빌리자면 – 연쇄살인범처럼 행동한다고 한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든 어떤 장애물이 놓여있든 그는 일을 밀고 간다. 하지만 라거펠트가 추적한 후 제거하는 것은 다름아닌 결함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그의 패션 사진들이 여전히 트렌드에 뒤쳐지지 않아 보이는 것이다. 라거펠트의 작품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한 후 틀을 완전히 깨버린다. 마치 애버던(Avedon)과 피터 린드버그(Peter Lindbergh)의 작품처럼 말이다.

그의 누드 작품들도 우아함을 입혀놓은 듯, 얌전하면서 절대 외설적인 느낌을 풍기지 않는다. 칼 라거펠트는 사람들을 놀래키거나 도발하려 들지 않는다.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나 “성의 역사” 를 쓴 악명 높은 안드레 세라노(Andres Serrano)의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 관습에 도전을 할 때에도 정신적 도전을 추구한다. “폭력의 미(The Beauty of Violence)”라는 작품에서 디오니소스의 본능적 댄스를 추던 밥티스트 지아비코니(Baptiste Giabiconi)가 욕망의 가장 근원적 충동을 표출하는 장면에서도 누드가 드러나지 않고 렌즈에서 멀어졌던 것과 같이 말이다.

칼 라거펠트는 주로 성당을 연상케 하는 그의 큰 스튜디오에서 사진 작업을 한다. 그의 스튜디오에는 책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라거펠트의 스튜디오를 워홀의 팩토리(Warhol’s Factory)와 간혹 비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칼 라거펠트의 작업과 신념은 기계가 되려 했던 워홀과는 거리가 멀다.

뉴욕에 위치한 워홀의 팩토리는 방황의 장소였다. 반복과 고정관념을 이용해 무명의 창조를 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라거펠트의 스튜디오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곳은 오뜨 꾸뛰르가 탄생하는 작업실이자 여러 사람이 협력하는 장소이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과 기술에 노력을 더하여 진정한 예술을 탄생시키는 곳이다. 테이블 위에 종종 놓여있는 다이어트 콜라를 빼면 칼 라거펠트의 스튜디오는 1960년대 미국을 지배하던 환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스튜디오 7L은 파리 중심가에 위치한 깔끔하고 밝은 분위기의 작업실이다. 진지하게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유머가 종종 오가는 따뜻한 분위기에서 하나의 작은 팀이 탄생하였다. 이곳은 사진작가, 아니 이미지 창조자의 작업실이다. 진정한 이미지 작업실이며 독특한 작품들이 탄생하는 곳이다.

사진의 역사상 비슷한 작업을 한 예술가들은 많았다. 드가(Degar),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 브랑쿠시(Brancusi)등 유명한 예술가들은 사진을 자신만의 비법으로 사용했고 창의적이면서도 혁신적인 작품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드가는 자신의 그림 작품을 정리하기 위해, 브랑쿠시는 공간에서의 조각상 작업을 위해 이미지를 사용했다면 칼 라거펠트에게 이미지는 자극제와 같았다. 선보다 중요한 것은 형태이고 형태는 빛을 머금는다. “나는 사진을 찍을 때 그림을 그릴 때와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빛 때문에 새로운 차원의 작품이 탄생한다.(2)” 그러므로 사진 찍기란 단순히 빛을 가지고 쓰는 것이 아닌, 빛을 이용해서 작곡하고 그림을 그리는 행동과도 같은 것이다.
수많은 사진작가들과 특히 신문 및 잡지 사진기사들에게 노출은 곧 리스크를 의미하기도 한다. 위험하다는 것 외에도 카메라에 잡힌 순간이 다시 반복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사진 작가들에게 노출은 사진으로 창조하는 과정의 일부분에 해당할 뿐이다. 그 창조의 과정에는 실험과 현상 및 인화가 있다. 이들에게 잉크와 색감 뿐만 아니라 종이의 선택은 굉장히 중요하다. 칼 라거펠트는 이 분야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종이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재료입니다. 그림이 시작하는 곳이고 사진이 완성되는 곳입니다.
. (3)” 오래된 과정이든 현대에 들어서서 생긴 과정이든 새로운 과정이든, 그것이 골드와 실버 프린팅이든 레시노타입(resinotype)이든 폴라로이드이든 스크린 프린팅이든 디지털 프린팅이든 상관 없다. 앤 까르티에-브레송(Anne Cartier-Bresson)이 칼 라거펠트의 작품을 보고 쓴 노트에서 지적했듯이 “라거펠트가 1987년도부터 지금까지 사진 작업을 하는 동안 노출과 인화에 있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칼 라거펠트는 이런 변화 뿐만 아니라 새로운 필름의 발전까지 모두 잘 활용함으로써 수작업과 인화 과정의 장인정신을 잘 강조해 독특한 작품을 탄생시켰다.(4)”
칼 라거펠트는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 에드워드 스타이켄(Edward Steichen), 클러렌스 허드슨 화이트(Clarence Hudson White) 그리고 1920년대 독일 사진 기법에 관심이 많다고 인정한 바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회화, 영화, 건축, 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모두 참고한다.

오스카 슐레머에게 경의를 표한다(Homage to Oskar Schlemmer)”라는 시리즈의 작품 중에는 프리츠 랑(Fritz Lang)의 메트로폴리스(Metropolis)와 무르나우(Murnau)의 영화로부터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 외에도 로렌스 알마-타데마 경(Sir Lawrence Alma-Tadema)의 작품이나 카스파르 데이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작품 속 아름다운 풍경 혹은 프레데릭 에드윈 처치(Frederic Edwin Church)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칼 라거펠트는 그의 우아함과 유머감각으로 여러 장르에서 영감을 얻는다. 마치 그가 움직이는 이미지만큼이나 정지된 이미지를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의 사진 작품은 젊은 세대와도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며 미술, 사진, 영화, 영상의 장르를 모두 아우른다고 할 수 있다.

백과사전을 방불케 하는 방대한 유럽 문화에 대한 지식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새로운 형태와 재료를 향한 끝없는 탐색이며, 사진에도 큰 가르침을 준다고 평한다. 그가 주는 가르침은 거창하거나 학문적이라기 보다는 가벼우면서도 환상으로 가득 차 있는, 궤도를 벗어나 모험을 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한 남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라거펠트는 기꺼이 사진 학교 과정을 거부한 진정한 거장이다.

장-뤽 몽테로소(Jean-Luc Monterosso)
메종 유럽 포토(Maison européenne de photographie) 회장
2010년 8월 25일 파리에서

(1) 에릭 프룬더(Eric Pfrunder)와의 인터뷰, 2010년 7월 20일, 파리
(2) 불라키아 갤러리(Galerie Boulakia)전시의 카탈로그 서문, 1992년, 파리
(3) 위와 동일
(4) 앤 까르티에 브레송 (Anne Cartier-Bresson), 사진작업의 “피부”. 칼 라거펠트 작품에 대한 노트 , 215페이지 참고.


공유하기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