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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 가을-겨울 오뜨 꾸뛰르
엘리자베스 퀸(Elisabeth Quin)

파리 그랑 빨레는 로마의 콜로세움이나 파리의 뤼테스 원형 경기장(Lutèce Arena)에 필적할 만큼 압도적인 곳이다. 중앙 단상에 당당히 서있는 높이가 18미터에 이르는 황금빛 사자는 걸리버가 찾아와 만들었을 법한 크기다. 마치 초현실주의적인 꿈에서처럼 사자가 앞 발톱 아래 감싸듯 거머쥔 거대한 무지갯빛 진주가 벌어지면서 모델들이 걸어 나온다. 사자 소굴에서 풀려난 성녀 블란디나(Blandina)의 현대판을 보는 듯하다. 이들은 아름다움으로 야수를 제압하고, 야성적 매력으로 야수를 길들일 것이다. 2010/11 가을-겨울 오뜨 꾸뛰르 패션쇼가 펼쳐진 7월 6일 화요일, 이 무시무시한 사자는 양처럼 온순하고 얌전했다.
칼 라거펠트가 지난 3월 처음으로 모조 예티 퍼(faux yeti fur)를 샤넬 라인에 포함해 넣은 이후 샤넬은 황홀한 예티 라인을 계속 늘려왔다. 그러나 예티를 선택한 원래 이유는 기후 변화에 대한 인식 제고에 있었다. 이번 오뜨 꾸뛰르 패션쇼 “사자상 아래서 under the sign of the lion”는 샤넬이나 코코 샤넬의 뿌리를 찾겠다는 심오한 의미가 있다. 문장학, 상징주의, 혹은 다른 과학적 해석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여기서의 사자란 코코 샤넬의 별자리를 상징한다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샤넬은 사자상을 수집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5번째 별자리인 사자자리는 태양의 밝은 빛, 아름다움, 강한 기운 뿐 아니라 부활과 갱신을 상징한다. 코코의 삶과 샤넬 하우스의 개성은 이러한 사자자리의 특징에 잘 부합하며, 그 가을-겨울 오뜨 꾸뛰르 컬렉션에서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호화스러움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것은 샤넬의 공방들, 르사쥬(Lesage), 르마리에(Lemarié), 마사로(Massaro), 몽텍스(Montex)의 전문성에 바치는 찬란한 찬사라고 할 수 있다.
백만 개의 시퀸이 달린 드레스, 마사로 공방에서 만든 앵글 부츠를 신고 관능적인 형상이 새겨진 오간자 드레스를 입은 모델, 칼 라거펠트가 18세기 독일 자기에서 영감 받아 탄생시킨 특유의 꽃 문양, 짧은 소매 볼레로에 제국적 기상이 담긴 시퀸 자수들... 시퀸의 해바라기가 여기저기 박힌 볼레로를 선보였는가 하면, 사자를 연상시키는 패턴 드레스는 또 다른 사자자리 태생, 루이 13세의 기운과도 여지없이 담아 있다.
컬러는 완연한 가을빛이지만, 우울한 빛을 띠고 있지는 않다. 카키색, 브론즈, 회갈색, 베이지, 밀크 초콜릿, 화이트, 짙은 보라색, 짙은 암청색과 함께 블랙이 당연히 사용되었다. 패션쇼 마지막 부분에서 선보인 한 작품의 레이스에는 부드럽고 은은한 블랙이 사용되기도 했다. 모든 의상들이 입기 편하고 모던하게 전개되었다.
놀랄 만큼 독특한 선홍색의 트위드 플레어 코트는 타이가 설원에서 웃고 있는 모던한 안나 카레니나(Anna Karenina)에게 어울리듯, 대낮에 파리나 뉴욕 거리를 활보하는 생기발랄하고 패셔너블한 젊은 여자에게도 멋들어지게 어울릴 것이다.
이 컬렉션의 풍성함은 그것의 젊은 정신과도 맥을 같이 한다. 모델들이 장식새김이 들어간 하이힐을 신고 성큼성큼 걸어 나갈 때, 암사자 스타일의 머리는 다소 불안해 보일 만큼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치는가 하면, 어깨, 팔, 엉덩이, 다리는 아무런 제약 없이 맘껏 움직인다. 칠부 소매에 무릎 아래로 떨어지는 원피스와 미드 카프 플레어 스커트에는 트위드 자수가 보일 듯 말 듯 절묘하게 놓아져 있다. 밤은 짧다! 칼 라거펠트는 의미 심장한 미소를 띄며, “그 동안 레드 카펫에 프루프루(froufrou) 드레스는 너무 많이 등장한 거 같지 않아? 시대도 변하는데 말이야. 여자들은 이걸 누구보다 먼저 알 텐데…” 라고 한다. 샤넬은 멋과 젊음을 발산하는 눈부시면서도 일관성 있는 컬렉션을 선보여 왔고, 이 모두가 창조성과 새로움이라는 사인 아래에서 전시되었다. 음향 연구소(IRCAM: Institute for Research and Coordination Acoustic/Music)의 황금기를 연상시키는 사운드와 루 리드(Lou Reed)가 한데 섞인 듯 한 미셸 고베르의 곡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사자 가면을 쓴 모델 밥티스트가 하얀 옷으로 단장한 신부를 대동하고서 런웨이를 걸어 나온다. 패션쇼는 이렇게 상상력이 가미된 샤넬 특유의 터치로 마무리 되었다. 이게 바로 24세 피아니스트 티모시 앙드레의 솜씨다. 이 오뜨 꾸뛰르 컬렉션을 보면서 코코 샤넬이 남긴 유명한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위대한 디자이너란 영혼에 미래를 담고 사는 사람이에요. 저는 제가 만든 작품을 좋아할 뿐이고, 그것을 잊게 되면 또 만들어 내는 거죠.” 사자와 한없는 새로움이라는 사인 아래서, 샤넬의 칼 라거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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